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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8월의 탄생 작가] 염상섭 작품 소개

'삼대', '표본실의 개구리' 등의 제목을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언어 영역 시간에 이러한 작품들로 꽤나 골머리(?) 를 앓았던 기억이 있으실텐데요, 오늘 소개할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남긴 한국 근대 문학의 거장입니다.

 

특히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작품에 투영한 최초의 소설가로도 의미가 있지요.

 

이제는 언어영역의 부담감에서 벗어나 그 작품을 조금은 더 즐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 염상섭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염  상  섭

 

출생 - 사망 : 1897.8.30 - 1963.3.14

 

출생지 : 서울 종로구 필운동

 

대표작 : 삼대

              표본실의 개구리

 

 

 

염상섭은 1897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6남 2녀 중 셋째아들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주·가평·의성 등지에서 군수를 지낸 인물로, 염상섭은 꽤 넉넉한 집안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지요.

 

그럼에도 “삭막하고 살벌한 사회 환경이나 국내 정세와 쇄국적·봉건적 유풍에서 자라난 소년이 문학의 인간적인 따뜻한 맛과 넓은 세계를 바라볼 제, 조국의 현실상이 암담할수록 여기에서밖에 광명한 희망을 찾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을 일제강점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유일한 광명과 희망의 출구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사실주의 문학의 거봉으로 우뚝 선 염상섭은 열다섯살에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아오야마학원을 중퇴하고 교토 부립 다이이치중학교를 졸업하고서 1917년 게이오대학 문과에 다니면서 몇몇 일본 정치가에게 「조선독립론」을 써 보내 그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이후 1919년 3·1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한 뒤 『성경』의 한글판과 《학지광》, 《창조》 등의 인쇄를 담당한 ‘복음인쇄소’에 직공으로 취직하여 노동자 체험을 합니다. 1920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에서 약 6개월 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가 《폐허》의 발간을 위하여 기자직을 사퇴하지요. 그 또한 《폐허》 창간호에 다른 동인과 마찬가지로 염세 성향을 띤 고통의 신음을 시로써 토하여 냅니다. 이러한 염세주의에는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절망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창간호에 「법의()」라는 서문과 시를 싣고, 2호에 「화수하()에서」를 발표하는 등 염상섭은 시·소설·비평에서 두루 솜씨를 보입니다. 1921년 《개벽》에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기 전까지 그는 비평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폐허》 활동을 하는 동안 문단의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창조》의 김동인과 벌인 문학 논전이 그것입니다. 《창조》에 있으면서 많은 사건을 일으키는 김환은 전영택의 소개로 김동인과 만나게 되고, 글을 선별하는 눈이 까다롭던 김동인은 김환을 《창조》의 동인으로 받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이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하여 지면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김환은 김동인이 실어주지 않은 자신의 원고 「자연의 자각」을 『현대』에 보내어 게재하고, 《폐허》의 염상섭이 같은 잡지 《현대》 2호에 김환의 소설에 대한 비평 「자연의 자각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논전이 시작되지요. 염상섭은 김환의 작품을 조목조목 비평하고 반드시 이번 경우뿐 아니라 문단 전반에 작품성이 미흡한 글들이 나도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도 뻔뻔스럽게 작가로 행세하며 기성 문단에 군림하고 있던 작가들에 대한 비판론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김동인은 자신도 ‘문학성’을 높이 살 수 없던 김환의 글과 관련된 일이지만,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염상섭의 인신공격성 발언과 김환에 대한 비난이 곧 《창조》 동인 전체에 대한 폄하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끼게 되지요.

 

이렇게 시작된 논전은 <동아일보>에 염상섭의 「여의 평자적 가치를 논함에 답함」, 김동인의 「제월씨에 대답함」으로 이어지고, 이 뒤에도 《폐허》에 염상섭의 「김군께 한 말」, 《창조》에 김동인의 「비평에 대하여」로 이어지며 한동안 문단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 됩니다.

 

이는 1920년대에 일어난 소설가 김동인과 비평가 염상섭의 대립이자 ‘창조파’와 ‘폐허파’의 대립이었으며 이 사건은 문학비평이 일반적인 문학론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분화하고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후 염상섭은  그 이전까지 우리의 어느 소설에서도 본 바 없는 괴이하고 실험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인간 내부의 심리를 파헤친 「표본실의 청개구리」라는 걸작을 내놓습니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이 사람이 소설을 썼다.’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그 작품을 보았다. 그러나 연재물의 제1회를 볼 때 벌써 필자의 마음에는 큰 불안을 느꼈다. 강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과도기의 청년이 받은 불안과 공포의 번민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나타난 것은 그것이었다. 필자는 상섭의 출현에 몹시 불안을 느끼면서도 이 새로운 하므레트의 출현에 통쾌감을 금할 수 없었다. 라는 감상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우리나라 소설사의 맥락에서 무척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염상섭은 이 작품에서 3·1운동 직후 지식인이 겪은 번뇌를 냉철한 시각으로 생물을 해부하듯이 임상학적인 수법으로 그려내어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작가’라는 평을 듣게 됩니다.

 

이후 잠시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있던 염상섭은 1921년 최남선이 꾸리던 주간 종합지 <동명>의 기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얼마 뒤 <동명>이 <시대일보>로 개칭되면서 그는 사회부장을 맡게 되지요. 1922년 《개벽》 1월호에 「암야()」를 발표하고, 2월호부터 중편 「제야()」를 연재하였습니다. 《신생활》 7·8월호에는 개성을 앞세워 이룩한 그동안의 소설 세계에서 한 걸음 사회적 자아를 찾아 나아간 중편 「만세전」을 연재하게 됩니다. '만세전' 또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지요.

젊은 지식인의 암담하고 불안한 현실을 ‘묘지’에 비유한 자서전적 소설인 「만세전」의 경우 연재를 시작할 때 제목이 「묘지」였는데 1948년에 단행본으로 펴내며 「만세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또 「해바라기」라는 작품이 1923년에 단행본으로 나올 때 「신혼기」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염상섭은 제목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였으며, 평소 동네의 문패를 두루 살피며 항렬까지 따져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지을 만큼 자잘한 문제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1931년 1월, 그는 <조선일보>에 한국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장편 「삼대」를 연재합니다.  염상섭은 삼대의 줄거리를 통해 구세대 과도기 신세대 또는 봉건 지주 시대, 개화 시대, 자본주의 시대라는 삼분법 속에서 각 세대의 전형을 반영하는 인물들의 사고·행동·갈등을 정밀하게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자본주의 개화 지식인을 대변하는 덕기의 맞은편에 병화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지향 세력을 놓으면서도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취하지 않고 상대적인 수용자세와 평형을 꾀함으로써 한결 총체적인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염상섭 특유의 세밀함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었는데, 염상섭과는 대조적으로 문체의 과감한 생략과 간결함을 창작 기법의 표준으로 삼았던 김동인은 그의 이러한 지나친 꼼꼼함에 대하여 '그의 묘사법은 너무 산만적이다.' 라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1945년 해방 뒤에는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일하였으며, 1949년 소년 소설 「채석장의 소년」과 단편 「두 파산」, 「임종」을, <조선일보>에 장편 「난류」와 「탐내는 하꼬방」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이후 생활고와 병에 시달리던 한국 현대소설의 개척자 염상섭은 1963년 3월 14일 예순여섯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염상섭 [廉想涉] - 깐깐한 사실주의 소설의 거장 (나는 문학이다, 2009. 9. 9., 나무이야기)

 

 

암울한 시기 속에서 한국 근대 문학의 꽃을 피운 염상섭. 그의 대표작을 소개합니다.

 

 

* 도서 제목이나 소장정보를 클릭하면 정석학술정보관 소장정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1) 삼대

 

한국 리얼리즘의 대가로 꼽히는 염상섭의 대표작. 개화기 세대와 3ㆍ1운동 세대, 식민지 세대를 각각 대변하는 조덕기 일가 삼대의 가족사를 중심축으로, 세대 간의 단절과 연속, 남녀의 사랑과 연대, 진보적 사회운동의 실험과 좌절을 입체적으로 엮어냈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식민지 조선의 한 축도를 그려내며, 인간의 이기심과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문학적 이해와 통찰을 이루어내고 있다.

 

소장정보 : 인문과학정보실 811.36 염52다

 

 

 

 

 

2) 표본실의 청개구리

 

현진건·김동인과 더불어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표방한 대표적인 작가 염상섭의 대표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어둡고 침통한 사회의 일단면을 자연주의 수법으로 다룬 작품이다.

 

소장정보 : 인문과학정보실 811.36 염51표1

 

 

 

 

 

 

3) 두 파산

 

염상섭의 '두 파산'.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 전후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의 세월동안 작품활동을 해 온 저자가 작품을 통해 관념적 허무주의에서부터 식민지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현실에 대한 사실적 증언, 그리고 전후 삶의 안정화 내지는 세속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다.

 

소장정보 :  인문과학정보실 811.36 염52두

 

 

 

 

 

 

도서 정보 및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