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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문화

절망에서 꽃을 피우다. '프리다 칼로'

한창 꿈 많고 웃음 많을 나이 열 여덟. 9개월을 깁스에 갇혀 살고, 평생을 걸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떠한 기분일까요?  이 때에 떠오르는 단어는 '절망' 일 것입니다.

살아 온 날 보다 많은 날들을 고통과 타인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진정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밝고 사랑스러울 열 여덟의 나이에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고 표현할 정도로 처참한 고통을 당해야 했던 한 사람은 고통 속에 침전되기 보다는 이를 '예술' 로 승화시키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수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원한 예술 작품으로 남아있지요.

 

누구보다 뜨겁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오늘은 그녀의 삶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습니다. 칼로가  세 살이 되던 해인 1910년 멕시코에서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는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보다 7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디아스 독재정권의 지나친 노동자와 농민 착취에 항거하여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칼로는 혁명의 열정과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총명하여 멕시코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에스쿠엘라 국립 예비학교에 진학했는데, 이 학교에서 여학생은 전교생 2000명 중 35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생물학, 해부학 등을 공부해 의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칼로가 18살이던 1925년 9월에 일어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멕시코의 진보적인 여성 의사로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굣길에 오른 버스와 전차가 부딪히면서 칼로는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강철봉이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 나왔으며, 그야말로 살아있는 것이 기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꼬박 9개월을 전신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두 손만 자유로웠던 칼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누워서 움직일 수 없었던 칼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그녀가 평생을 두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로는 자화상에 대해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걷기 위한 수 차례의 수술 끝에 칼로는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녀를 평생 동안 괴롭혔으며, 또한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주기도 합니다.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칼로는 자신의 운명이 그림에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칼로의 경우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기에 그림을 정확히 평가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칼로는  리베라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고, 사진 작가인 티나 모도티를 통해 리베라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칼로가 리베라를 처음 만난 것은 학창 시절입니다. 강당에 벽화를 그리러 온 리베라를 처음 보게 되는데, 당시 리베라는 멕시코와 혁명을 대표하는 미술가라는 명성과 함께 분방한 여성편력과 돌발적이고 기괴한 행동으로 인해 식인귀라는 악명도 함께 드날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림에 관심은 있었지만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던 칼로에게 리베라는 자신의 인생과는 무관한 그저 괴팍한 예술가였을 뿐이었지요.

 

칼로의 그림을 본 리베라는 “프리다의 작품에서 예기치 않은 표현의 에너지와 인물 특성에 대한 명쾌한 묘사, 진정한 엄정함을 보았다.  잔인하지만 감각적인 관찰의 힘에 의해 더욱 빛나는 생생한 관능성이 전해졌다. 나에게 이 소녀는 분명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평했다 합니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공통 분모로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이에 1929년 8월, 22세의 칼로는 그녀보다 21년 연상인 리베라와 결혼을 하였으며, 칼로는 당시 멕시코를 대표하는 천재화가의 반열에 올라있던 리베라의 아내로서 멕시코 공산당 입당과 탈당을 같이 하고 그의 그림을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여성편력을 가지고 있던 리베라는 결혼 후에도 외도를 멈추지 않았고, 남편 리베라로 인해 칼로는 고독과 상실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훗날 칼로는 리베라와의 만남을 자신이 10대에 겪은 교통사고에 이은 ‘두 번째 대형사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교통사고로 다친 그녀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몇 차례의 유산이 '모성을 가진 여성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절망감을 더해준 것이지요. 리베라와 아이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그림으로 승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칼로는 멕시코 전통 속에 고독과 고통을 녹여내어 그 어떤 미술 범주에도 들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풍파 속에서 그녀를 괴롭혔던 척추의 고통이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한 번의 이혼 후 재 결합한 두 사람의 삶은 겉으로는 비교적 평온했습니. 고향에서 앵무새와 원숭이, 개를 기르며 칼로는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아갔지요. 칼로는 그림을 계속 그렸고,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뉴욕과 파리 전시 이후 국제적으로도, 국내에서도 명성이 쌓아갑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을 더욱 심해져 건강이 악화된 칼로는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만 했고 몇 차례의 척추 수술은 실패를 거듭하고 맙니다.

 

칼로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만 했으며 휠체어에 기대 간신히 앉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칼로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으며 하루에 서너 시간씩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리고 1948년 멕시코 공산당에 다시 입당하며 사회적인 관심과 참여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말년에 그린 그림들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1953년 멕시코에서는 처음으로 칼로의 개인전이 열립니다. 그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리베라와 친구들이 열어준 전시회였습니. 일어나 앉지도 못하게 된 칼로는 침대를 그대로 전시회장으로 옮겨 개막식 축하연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1년 후인 1954년 7월 칼로는 ‘당신을 빨리 떠날 것 같다’면서 한 달 여 남은 결혼 25주년 기념 은혼식 선물을 리베라에게 먼저 주엇으며,그날 새벽, 칼로는 폐렴증세의 악화로 고통과 고독 속에서 보낸 47년의 슬픈 생을 마칩니다. 일기 마지막에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칼로가 겪었던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지요.

 

칼로가 죽고 1년 후 리베라는 그녀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살았던 코요아칸의 ‘푸른집’을 나라에 기증합니다. 그녀의 집은 칼로를 기리는 미술관이 되어있습니다.

 

참조 : 네이버 캐스트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삶을 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육체의 고통, 정신적 고통에도 굴하지 않았던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 또한 볼 수 있지요.

 

프리다 칼로의 강렬한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강렬한 색채와 자기 자신, 특히 자신의 고통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절하도록 강렬했던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만큼 열정을 다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관련 도서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 도서 제목이나 소장 정보를 클릭하면 정석학술정보관 소장정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1) 프리다 칼로, 타자의 자화상

 

화가 자신인 ‘나’와 자신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드러낸 프리다의 시선『프리다 칼로, 타자의 자화상』.

 

 이 책은 프리다 칼로가 겪었던 개인적 격동기와 멕시코가 안고 있던 시대적 변화가 함께 뒤엉켜 작품 속에 그려냈다.

 

다양한 프리다의 그림과 그녀의 사진이 어울러져 프리다의 삶과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장정보 : 인문과학정보실 759.972 우53프

 

 

2)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가 쉰 살이 넘어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멕시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부부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삶을 그려낸 전기다.

 

르 클레지오는 두 사람의 만남, 디에고의 사연 많은 과거, 프리다의 고통과 고독, 두 사람이 공유하는 혁명 신념, 트로츠키와 브르통과의 만남, 미국에서 겪은 모험, 미술계의 혁신을 위한 그들의 역할 등을 이야기하며 두 사람의 삶을 촘촘히 엮어냈다.

 

화려하면서도 아픈 그들의 사랑 이야기와, 전혀 다르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작품 이야기, 여러 차이를 뛰어넘어 결국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운명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차분하게 사실과 사건들을 설명하고 프리다와 디에고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소란스러운 시대에서 애쓰며 치열하게 살다간 프리다와 디에고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소장정보 : 인문과학정보실  759.972 르87829프2

 

 

3) 나, 프리다 칼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인 프리다 칼로. 여섯 살에 앓은 소아마비와 열 여덟 살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서른 다섯 차례나 수술을 받는 등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았지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독특한 작품세계로 승화시켰다.


책의 첫 부분에는 자화상을 중심으로 그림과 사진자료를 70여장과 그녀의 삶을 보여주는 편지들이 수록 되어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일기 중
부록으로는 자신의 작품 '모세'에 관한 강연과 에세이 '디에고의 초상'이 실렸다.

 

소장정보 : 인문과학정보실 759.972 칼295나

 

 

*도서 정보 및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더불어 6월 6일 부터 프리다 칼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절망에서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프리다 칼로.

그녀가 가졌던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의지는 모두에게 감동을 줄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삶과 작품이 궁금하다면 전시회를 한 번쯤 들려 보는 것 또한 좋은 기회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