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2월이 되어, 이제 2021년도 한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여러분은 어떤 한 해를 보내셨나요?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많이 이루셨나요?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한 해를 보내셨나요?
만족스러웠다면 스스로를 안아주며 자랑스럽다는 말을 건네고, 혹여나 만족스럽지 못했더라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을 건네 보아요.
한 해를 마무리할 준비를 시작하는 11월의 끝자락에, 다사다난했던 1년을 잘 보내주자는 뜻으로 '위로'를 주제로 한 시를 준비했답니다. 준비한 시가 여러분께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요.
끝까지 힘내요!
(본문에 수록된 시 중 이해인 작가의 시는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에서 더 많이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정호승 –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김박은경 – 일어나, 거인
굶주림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아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구나 돌멩이만큼 작게 보이는 마을을 뒤로 하고 우물만 하게 보이는 바다에 두 발을 담고 초승달을 머리에 인 채 목을 비틀며 대체 뭘 보고 있는 거니 흐트러진 눈빛과 엉켜버린 머리칼 부르튼 입술 너무 커버려 이젠 어디에도 숨을 수 없겠지 너는 지금 거인이고 앞으로도 계속 거인일 거야 직전의 한 걸음 때는 가르던 공기가 달라졌겠지 얼음송이처럼 차갑기만 한 눈들이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었을 거야 그때 너는 한겨울 깊은 우물 동그란 암흑 같았을 거야 내가 예언하지, 모든 게 사라질 거라고 그 밤 초승달도 검정 옷도 숨어들어간 구석도 다 사라질 거라고 그러니 단 한 단어만 남기라고 그것에 전부를 걸라고 이제 일어나 스스로의 오줌이라도 삼켜 배를 채우라고 머리 빗고 노래하라고 숨지 말고 감추지 말고 걸어 나가라고 위반하고 저지르고 더럽히라고 끝끝내 자유로워지라고 더욱더 거대해 누구도 두려울 일 없는 진짜 거인이 되라고
장이지 –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 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밑이 검어져서늠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이해인 - 희망은 깨어 있네
나는
늘 작아서
힘이 없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힘든 일 있어도
노래를 부릅니다
자면서도
깨어 있습니다.
이해인 - 꿀잠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한숨 자고 나면
거짓말처럼 편하고
가벼워지는 몸
잠은 나에게
달콤한 꿈이고
살려주는 은인이고
만만한 친구이네
고마운 마음
잊고 있다 가도
힘들 때면
몹시 그리운 잠
약이 되고 꿀이 되는 잠
잠이 있어
이만큼 살아왔네
[정석 프렌즈 1기 김가희, 이다은 프렌즈님께서 작성해주신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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